한살림 물품이야기

부부는 사이가 좋았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누는 오누이처럼 하하호호 웃고 몸을 기댔다. 제주시 구좌읍은 아내 강경옥 생산자의 고향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당근밭 일을 도왔다. 파종할 때 씨 뿌리는 어른들 뒤를 따라 흙으로 씨 덮는 일을 했는데, 주로 동네 아이들 담당이었단다. 부산 남자 김성훈 생산자는 농산물 중개 일을 하다 제주 당근밭에서 스무살 아내를 처음 만났다. 무뚝뚝해 보여도 어린 아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도록 늘 배려하고 챙기는 자상한 남편이다. 천 평 넘는 겨울 당근밭에 섰을 때 ‘넓어서 황량하다’는 생각보다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은 건 밭 주인들의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당근 맛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남편과 아깝다며 그만 뽑으라 말리는 아내. 그러면서도 “오해 맙서. 나 아침마다 당근쥬스 갈아주는 여자우다.” 사랑스럽게 농을 던진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쳐 얻을 수 있는 귀한 친환경 당근의 수확을 앞둔 부부의 마음은 어느새 봄이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설레는 마음으로 열었던 2015년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2015년 한 해도 한살림은 정말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한살림을 더욱 한살림답게 만드는 2,400여 가지의 물품.

올해는 어떤 물품들이 조합원님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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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또 한차례 늦가을 비가 지나갔다. 윤희창, 권오화 생산자 부부는 며칠째 검은콩 수확에 한창이다. 남편이 앞서 걸어가며 콩을 베면, 아내가 그 뒤를 따라 콩대들을 싹싹 그러모아 가지런히 쌓는다. 호흡이 척척 맞는다. 스물한 살, 스물세 살 나이에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농사가 곧 삶이 돼버린 부부의 일상은 언제나 밭에 머물렀다. 이렇다 할 요령 없이 종일 허리 숙여 씨를 심고, 풀을 뽑고, 새를 쫓다가 알곡을 거두는 친환경 잡곡 농사는 때론 슬픔이고 때론 기쁨이었다. 부부는 어린 시절 햇찹쌀과 수수로 만든 수수부꾸미와 쌀 밑에 검은콩을 깔고 짓던 밥 한 공기의 따뜻한 기억이 생생하다. 권오화 생산자는 지난겨울에도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손수 된장을 담갔다. 가족 모이는 새해 아침에는 손수 끓인 두부를 아들, 손주에게 먹이는 게 낙이다. 작년 이맘때 수확한 콩을 담아 수북했던 자루는 저만치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도, 알뜰살뜰 야무지게 농사짓고 살림했다. 한겨울 휴식을 기다린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강원도 홍천군 유치 2리 작은 야산 밑에 펼쳐진 가을 배추밭은 온통 초록, 초록바다다. “이제 수확해도 되겠어요.” 손바닥을 펴 결구가 잘 된 배추의 윗부분을 꾹꾹 눌러본 강장원 생산자가 말한다. 배추가 꽃처럼 예쁘다. “농사 짓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배추예요. 배추의 생리를 잘 알아야 해요.”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18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어느 학생들보다도 학구열이 높았다. 토양의 성질에 대해, 작물의 생리와 밭을 둘러싼 생태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농사엔 점점 더 자신이 붙고 마음은 즐거워졌다. 4년 동안 밤낮 공부하며 친환경 채소 농업 마이스터와 신지식 농업인장을 받았고,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는 그가 밭과 학교를 오가며 던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강장원 생산자는 역으로 그의 밭을 찾는 학생들에게 농사를 가르친다. 그중 몇몇 젊은이들은 벌써 농촌에 터를 잡고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더 이상 떠나가는 농촌은 아니었음 좋겠어요. 모두가 돌아올 수 있는 농촌이어야죠”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귀농 4년차. 올 한해 정재국 생산자는 기꺼이 논에서 살았다. 논에 엎드려 종일 풀만 뽑았더니, 어느새 ‘오리농부’란 별명도 얻었다. 땅에 자리를 잡고 쑥쑥 크는 벼들과도 부쩍 정이 들어 이제 쌀 한 톨 한 톨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귀한 낟알 하나하나가 막상 밥상에 오르면, 그만큼 귀한 줄 몰라요. 인간의 오만함이죠. 진짜 농부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20년 넘게 한살림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니 이연화 생산자는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 대신 논과 밭으로 매일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몸담은 공근공동체 어르신들은 만날 때마다 “논에 물이 부족하다.”, “풀이 많다.” 헤매는 그를 아들처럼 챙겼다. 그는 이제 키 작은 모들이 땅을 딛고 일제히 일어나 자라는 생명의 경이를 느끼고, 논에 오면 소리내 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공근공동체가 시작한 한살림운동을 계속 해나가고 싶은 꿈도 점점 커진다. 요즘은 소 돌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년부턴 논과 밭에 소의 분뇨로 만든 퇴비를 넣어 순환농법을 시작해보려고요. 할 게 참 많아요.”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이홍재·구자희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생산자 부부

대학시절부터 바라 왔던 귀농의 꿈을, 18년 만에야 이뤘다. 경북 상주 화동, 포도밭 4,960여 제곱미터(1,500평)와 집 지을 동안 지낼 컨테이너 하나로 단출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한살림 포도 생산지인 상주 햇살아래공동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고 첫해부터 감행한 친환경 포도농사. 쉬울 리 없었다. 무엇보다 베어도 베어도 되살아나는 풀의 무서운 기세 앞에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거름을 얼마나 줘야 할지 몰랐고, 여느 농부들처럼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무와 풀, 땅과 계절을 알기까지 몇 해가 흘렀다. 귀농 11년차. 부부는 이제 포도밭에서 뭇 생명들의 치열한 삶을 본다. 매년 흥하고 또 쇠하기를 반복하는 풀과 벌레들, 그 틈바구니에서 포도가 더 알차게 영글어 간다는 것을 안다. “너무 편해도 포도가 맛이 없어요.” 해마다 속을 갉고 들어오는 애벌레들, 땅의 양분을 나누는 풀들. 생산자에게도 포도나무에도 만만찮은 환경이지만, 부부는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오늘보다 내일, 포도는 더 달고 맛있어질 것이다.

 

글·사진 문하나 편집부

그의 삶은 멸치에 이어져 있었다. 멸치중개인이었던 부친의 뒤를 이은 지 50년. 헤아릴 수 없는 멸치를 만지고 보았다. ‘좋은 멸치가 아니면 공급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한마디는 오랜 세월 지켜온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다. 한살림과의 인연은 1991년부터. 멸치중개인으로 이름 있던 그에게 제안이 왔다. 소량이라 이문은 없지만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기에 멸치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당시 한살림에는 보관설비가 없어 좋은 멸치를 보내도 쉽게 변질이 됐다. 속이 상해 공급중단 의사를 밝히던 날, 만류하던 실무자의 말이 생생하다. “바다 먹을거리를 책임져 달라는데 그만둘 수 없잖아요?” 그날부터 한살림 생산자로서의 자긍심이 생겼고 대구상회의 우선순위는 한살림이 되었다. 멸치가 귀한 해에는 수소문을 해서라도 좋은 멸치를 보냈다. 한살림도 보관설비를 갖춰 품질을 유지했다. 올해 일흔 이광술 생산자, 그 뒤를 잇는 아들 이정훈 생산자 역시 한살림이 우선이다. 또다시 멸치와 함께 깊어진 인연 속으로 멸치가 들어오기 시작하리라.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설레는 순간순간이지만 방법을 몰라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대상을 사물이나 일로 바꿔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첫사랑을 달콤하게 키워낸 이가 있다. 올해 처음으로 유기농 수박 농사를 시작한 김병억·강소희 생산자 부부. 수박과 첫사랑에 빠졌다. 첫사랑은 농사 경력 30년의 농부를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숙성시킨 볏짚 퇴비를 주고 배수가 잘 되기를 바라며 밭을 10번이나 갈았다. 울창한 수박 넝쿨을 뒤적거려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곁순 따기 작업은 보물찾기처럼 두근거렸다. 밤 기온이 낮으면 부직포를 덮어주고 낮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줬다. 극심한 가뭄에 맘고생이 컸지만 다행히 지하수는 마르지 않았다. 수확하는 날, 10kg까지 잴 수 있는 저울에 수박을 올리니 중량초과 오류가 난다. 첫사랑은 큼직한 수박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살림은 순수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이야기 했던 부부가 수박을 들고 웃는다. 뺨에 핀 홍조가 달콤한 수박 속살을 닮았다.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닭이 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박준범 생산자의 닭장에 가보길 권한다. 높이 3.5m, 넓이 661㎡(200평)에 달하는 방사장(운동할 수 있게 따로 마련한 공간)을 들여다보면 된다.

(중략)

닭장이 넓은 만큼 일도 많다. 외출도 못하고 닭장 안에만 있을 때도 있지만 맘껏 뛰노는 닭을 보면 그저 흐뭇하다. “주말에 알 안 낳는 닭 어디 없나요?” 가끔은 쉬고 싶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에서 경쾌함이 느껴진다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한살림소식지 527 중에서

겨울에 나오는 조생귤 공급이 끝나고, 이른 봄부터 얼굴을 내미는 감귤이 있다.
울퉁불퉁 한라봉을 시작으로 천혜향, 청견, 진지향, 세미놀까지 아직 입에 붙지 않은 낯선 이름들 대부분이 만감류다. 향이 짙고 크기도 조생귤에 비해 큰 편이며 생산 시기는 한 계절 늦다. 봄볕 따스한 3월 끝무렵 진지향 수확이 한창인 김필환 제주생드르영농조합 생산자의 과수원 안은 이른 아침부터 감귤 꼭지를 자르는 가위질 소리가 속닥이듯 울려퍼진다.

- 한살림소식지 524호 중에서 -  

입춘 지났다지만 미처 땅은 녹지 않았다. 부지런한 농부들도 밭에 두엄을 뿌리거나 농기구를 손질하는 게 고작인
데, 누런 덤불 사이로 올라오는 봄을 캐는 이들이 있다. “겨우내 땅에 뿌리박고 생명을 품고 있던 것들이라 쑥 향이
무척 진해요.”

(중략)

수확하는 3~4월 외에는 잡초를 뽑아주며 꼬박 열 달 동안 밭 관리를 해야 했고 듬성듬성 나는 쑥을 칼로 일일이 수확해야 했다. 벅찰 정도로 힘이 들 땐, 한살림을 시작하던 때를 떠올린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쑥을 받고 봄을 느끼는 순간이 중요하지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니까요.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한살림소식지 523호 중에서-

유기농으로 고구마를 기른 지 10년. 초기엔 어렵게 유기농으로 고구마를 길러도 판로가 없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래서 한살림과의 만남은 더욱 고맙고 소중하다. “조합원 분들이 맛있다고 하시고 덕분에 좋은 걸 먹고 산다고 하시니, 농사짓길 정말 잘했다 싶죠.”

(중략)

부부는 삼 남매에게 농사를 알려줄 거라 한다. 시간이 지나, 붉은 황토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을지 모를 삼 남매가 그려진다

 

글·사진 문재형 편집부

 

-한살림소식지 520호 중에서-